어떤 종류의 인종차별, 민스트럴 쇼

최근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비무장 상태의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하였다. 그리고 이 사건에 항의하여 미국 전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떤 종류의 인종차별도 용납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 유감을 표시했다. 

그리고 나는 저 ‘어떤 종류’라는 말에서, 명백하게 인종차별을 위한 예술이었다고 생각하는 한 쇼를 떠올렸다.

영국에서 석사 공부를 할 당시, ‘Radical Performance’ 과목을 수강한 적 있다. 깊이 있는 토론을 요구하는 수업이기에 적은 수로 정원을 한정 지어 처음에는 수강신청에 실패했었다. 그리고 교수님께 제발 이 수업 좀 듣게 해달라고 조르고 졸랐는데, 그때 마침 다른 수업으로 옮기는 친구가 있어 나는 이 수업을 수강할 수 있게 되었다. 교수님은 이후에도 내가 이 과목에 대해 엄청난 열정이 있는 줄 아셨지만, 사실 나는 차선책이었던 수업에 내가 직접 연기를 하고 평가받는 시험이 있다는 걸 알게되었고 꼭 그 수업을 피하고 싶었었다. 내 연기는 정말이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수업은 정말 최고 수업이었다.

한 번은 공연의 ‘Race and Ethnicity(인종과 민족)’이라는 주제를 다룬 적 있다. 그리고 그날의 발제자는 흑인 영국인 친구였다. 그 친구는 한참 동안 얼마나 많은 예술과 문화에 인종차별적 요소가 있었는지 설명을 하고, 한 아카이브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 영상은 ‘민스트럴 쇼(Minstrel Show)’였다. 처음 이 쇼를 보았을 때 감정은 역겨웠던 것 같다. 처음에 이 표현이 조금 과하다고 생각돼 순화하려고 했지만, 저 표현이 그때의 나의 감정과 가장 가깝다. 

민스트럴 쇼는 미국의 남북전쟁 후로 등장한 쇼로, 백인들이 블랙페이스 분장을 한 채 미국 남부에 살던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흑인들의 춤과 노래를 연기하였던 쇼다. 이 쇼는 1830년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1850년에서 1870년에는 가장 미국적이고 대중적인 극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끈 엔터테인먼트 쇼였다. 

블랙페이스 분장을 위한 화장품

앞서 언급한 블랙페이스는, 이미 한국에서도 몇 차례 논란이 된 바가 있어 익숙한 단어 일 것이다. 블랙페이스는 비 흑인이 흑인의 얼굴로 분장한 것을 말한다. 주로 이 분장은 석탄과 구두약으로 태운 코르크 등을 이용하여 눈썹을 그리거나 얼굴을 까맣게 칠하고, 입술을 두껍고 붉게 과장하며 인종적인 신체 특징을 희화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민스트럴 쇼 BILLY VAN의 포스터, 분장임을 더욱더 드러내기 위해 그 당시 백인들의 상징이었던 파란 눈동자를 포스터에 강조했다고 한다.

혹자는 민스트럴 쇼가 시대 상 흑인들이 무대 위에 올라설 수 없었기에, 흑인 분장은 흑인들을 극에 등장시키기 위한 대안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역설적으로 사회 비판적 요소로 볼 수도 있지 않냐는 주장도 한다. 하지만, 이 콘텐츠 안에서 흑인들은 여전히 노예로 묘사되거나 조롱의 대상이었기에, 개인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또, 흑인이 무대 위에 서기 시작했을 때도 민스트럴 쇼 무대에 등장하기 위해서는 흑인 조차 더 검게 보이기 위해 분장을 시켰다고 하니, 이 주장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뒷받침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민스트럴 쇼 안의 흑인의 모습은 앞서 말한 우스꽝스러운 분장 외에도 억척스럽고, 게으르며, 멍청하고, 시도 때도 없이 거짓말을 치지만, 언제나 웃고 있는 표정을 짓는 캐릭터로 표현되었다. 또, 모자를 씌우고, 옷은 자신의 몸보다 더 큰 턱시도를 입히거나 촌스러운 옷을 입히는 등 그 당시 지배 계층이 생각하는 흑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입혀 이미지화시켰다. 

2018년 차일디쉬 감비노(Childish Gambino)의 This is America를 기억 하는가? 나는 그 해에 벨기에에서 열리는 투모로우 랜드 페스티벌을 간 적 있는데, 그 3일 동안 가장 많이 플레이된 트랙은 이 곡 일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여기저기서 많이 흘러나오고 엄청난 인기를 얻었던 곡으로 기억한다. (이후에 조사해보니, 그 페스티벌에서 가장 많이 플레이된 곡은 Fisher의 losing it이었다.) 아무튼 이 This is America에서도 민스트럴 쇼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짐 크로우 포스터와 차일디쉬 감비노의 This is America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차일디쉬 감비노는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에서 다소 어색해 보이는 포즈를 취했다. 이는 과거에 민스트럴 쇼 안에 나온 ‘짐 크로우(Jim Crow)’라는 캐릭터를 패러디한 것이다. 짐 크로우는 가장 인기 있었던 민스트럴 쇼의 극작가이자 퍼포머, 토마스 다트머스 라이스 (Thomas Dartmouth Rice)가 쓴 쇼의 주인공이다. 

짐 크로우는 미국 남부 농촌 사투리를 쓰고 엉덩이를 쑥 빼고 한쪽 다리를 살짝 절룩이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캐릭터이다. 짐 크로우가 나오는 토마스 다트머스 라이스의 ‘점프, 짐 크로우(Jump, Jim Crow)’는 뉴욕 극장에서 엄청난 흥행 성적을 냈고 투어 공연으로 인기 몰이를했다. 그리고 이 이름은 차츰 민스트럴 쇼에 등장하는 중요 인물인 동시에 부정적인 흑인을 묘사하는 대명사로 사용되었다. 이후 모든 공공기관 및 장소에서 인종간 합법적인 분리를 허가한 ‘짐 크로우 법(1876-1965)’에 인용되기도 했다. 

가장 인종차별적인 이 쇼는 슬프게도 엄청난 인기를 끈 대중적 쇼였기 때문에, 영향을 받은 공연과 음악 장르들이 많다. 초기의 재즈의 형성에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고, 뮤지컬의 특히 레뷰(다양한 춤, 노래, 풍자적 코미디를 엮은)의 뿌리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켄터키의 옛집’, ‘오! 수잔나’, ‘스와니 강’등의 미국 민요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아름답고 슬픈 선율과 가사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 시작은 민스트럴 쇼의 라인의 하나로 사용되기 위해 작곡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6fFhstjZPM&feature=youtu.beBBC의 The black and white minstrel show

인권에 대한 질문들과 의식이 성장하면서 1920년쯤 민스트럴 쇼는 대부분 중단됐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쇼는 부끄러운 역사의 하나로 남았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영국의 공영방송인 BBC에서는 ‘The black and white minstrel show’라는 이름으로 1958년부터 다시 이 민스트럴 쇼를 진행했고, 약 1,650만명이 시청할 정도로 다시 한번 인기를 얻어 21년 동안 장수 한 프로그램으로 남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 또한 많은 논란과 함께 폐지되었는데, 이 때 한 연출가는 ‘민스트럴 쇼는 누군가에게 향수이고 이 또한 전통이라고 할 수 있으니 악의적 의도가 없다면 괜찮지 않나?’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nf9SkLYrWU&feature=youtu.be1930년 방영된 Spanky의 일부분, 아역배우가 블랙페이스 분장을 하고 연기하는 장면

내가 살아보지 못한 인생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건 언제나 조심스럽다. 따라서 이 글을 위해 평소와 같은 방법의 리서치에 추가로 인터뷰를 많이 찾아보았다. 한 영상 인터뷰에서는 과거의 민스트럴 쇼가 아카이빙 된 영상을 보며 토론을 하는데, 한 흑인 패널이 자신은 그 영상을 보고 싶지 않다며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나는 흑인 당사자들에게 민스트럴 쇼의 흔적은 분노를 넘어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대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누군가에게 직접적인 상처이고 명백히 문제있는 이 유산을, 향수를 위해 꺼내와 반복해야 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민스트럴 쇼의 기능(?)을 설명할 때 ‘entertain’과 ‘comedy’라는 말을 공통적으로 자주 언급했다. 이 단어들은 이번 맥락에서 사람들에게 진정한 기쁨이나 위로 그리고 행복을 주는 느낌이라기보다는 해학이나 유머의 기능을 했다는 해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왜 사람들은 민스트럴 쇼에 웃었고, 가장 인기가 있는 대중 쇼로 언급될 정도로 열광했었을까? 

다양한 관점으로 분석해 볼 수 있겠지만, 이 경우 철학자 토마스 홉스(Thomas Hobbs)의 ‘웃음의 우월 이론 (Superiority theory of humor)’이 가장 적용하기 좋지 않을까 싶다. 이 이론은 코미디의 해학과 웃음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이론인데, 인간은 다른 사람의 불완전함을 보며 우월감을 느끼고 편안하다고 생각하며 더불어 자기 만족감 (Self-glorification)까지 느낀다는 이론이다. 즉, 민스트럴 쇼는 흑인이라는 집단을 불완전한 존재 또는 열등한 존재로 이미지화하였고, 관객들은 그 안에서 우월감과 만족감을 얻었던게 아닐까? 정도로 적용 시켜볼 수 있을 것 같다. 

코미디에서 사용하는 이 이론과 요소 자체를 비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오락을 위해 누가 봐도 특정 집단을 떠올리도록 유도하고 인종차별적 고정관념을 사용하며 조롱하는 민스트럴 쇼의 이 방법은 옳지 않다. 그리고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콘텐츠 제작자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도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종은 우월을 판단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따라서, 인종적으로 우월감을 느끼거나 웃을 이유가 전혀 없다. 앞으로 적어도 나와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누군가가 블랙 페이스를 사용하거나 민스트럴 쇼와 같이 차별적인 해학 콘텐츠를 제공할 때 웃지 말자. 그리고 불편함을 느끼자. 의식적으로 서로에 대한 존중과 올바른 인식에 대한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가 존중하자고 외치는 ‘다양성’은 생각보다 거창한 개념이 아닐 수 있다.

 

 

 

조윤지 문화 기획자/프로그래머, 슬리퍼스 써밋